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라이프 오브 파이 (문단 편집) == 원작과의 차이점 == 전체적인 내용은 원작과 거의 유사하지만 세부적으로는 달라진 부분들이 몇 가지 있다. * 원작과 달리, 파이의 인도 여자 친구 아난디가 등장한다. 아난디와 작별인사를 못 했다는 게 파이에게 크게 후회가 되었는데, 이는 후반부에 다시 언급된다. * 파이에게 종교보다는 이성을 중시하라고 조언한 사람이 학교 선생이 아니라 아버지로 바뀌었다. * 원작에서는 없던, 선내 식당 씬이 추가되었다. 특히 원작에서 주방장과 선원으로만 언급된 두 인물이 각각, 육식을 좋아하는 ~~프랑스 국민배우~~ 주방장과 고기 스프를 좋아하는 행복한 불교 신자 선원으로 묘사되었다. 어쩌면 원작에서 파이가 요리사를 하이에나(육식동물)에, 선원을 얼룩말(초식동물)에 빗댄 것을 부각시키기 위해 요리사=고기를 좋아함, 선원=불교 신자[* 보통 세간에 퍼진 불교 이미지 중 하나가 '살생을 금한다'+'채식 권장' 이라는 점]라는 설정을 추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이 가정이 틀릴 수도 있다. * 첫 번째 표류 이야기에서 "눈 먼 조난자와의 조우" 에피소드[* 식인섬에 도착하기 직전에 있는 에피소드. 파이는 영양실조로 잠시 눈이 멀게 되는데, 이때 파이와 마찬가지로 구명보트를 탄 채 눈이 먼 조난자를 만나게 된다. 파이는 이 조난자와 몇 마디를 나누면서 조난자가 '''프랑스 억양'''을 사용하는 것과 [[식인|'''더러운 음식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 조난자는 파이를 습격하기 위해 파이의 보트 위에 무단으로 올라타다가 리처드 파커에게 잡아먹히고 만다. 얼마 후 눈이 보이게 된 파이는 피투성이가 된 보트를 보고 경악하지만 결국 배고픔을 못 이기고 조난자의 시체를 먹어버린다. 햇빛에 바싹 마른 탓에 평범한 고기와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고...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함께 있다는 파이의 말에 당신의 간과 살도 함께 있다는 조난자의 말을 보면 리처드 파커에게 죽지 않았다면 파이가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높다.]가 생략되었다. 이 에피소드는 원작에서도 잔인한 묘사가 많고, 눈 먼 상황을 영상매체로 옮기는 것도 어려울 뿐더러 두 번째 이야기와 그대로 대입하는 것도 애매하기 때문에[* 억지로 대입하자면 조난자=프랑스 선원이고 리처드 파커에게 먹힌 것은 파이가 선원을 죽이고 먹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삭제된 듯하다. * 파이가 화자로 설정된 원작과 달리, 영화에서는 파이가 작가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액자식 구성]]으로 바뀌었다. 고로 두 가지 이야기에 대한 선택은 작가의 몫으로 남게 되었다. 내용상의 차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영화에서는 첫 번째, 두 번째 표류 이야기에서 파이의 변화나 행동 양상이 원작에 비하면 많이 순화되었다. 참고로 첫 번째 이야기에서도 식인을 한 원작과 달리, 영화에서는 [[동족포식|'그것']]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언급된 미어캣들이 바글바글한 식인섬은 사실 부패해서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보트 위의 시체들을 암시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식인섬의 전체 형상이 '''[[http://i.imgur.com/3JgLiGH.png|누워있는 사람의 형상이다]]'''. 이에 대해서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강조하거나 바다 한가운데 홀로 남겨진 파이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려는 의도였을 수도 있다. 한편 영화 초반부에 어린 파이가 여러 신들에 대해서 언급하는 장면 중에서 [[비슈누]] 신은 우주의 바다를 떠다니며 잠을 잔다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는데 미어캣들이 사는 섬의 형상이 바로 누워있는 비슈누 신의 형상과 흡사할 뿐만 아니라 고정되어 있지 않고 떠다닌다는 부분에서도 공통적이다. 신과 기적에 대한 믿음을 다루는 것이 소설과 영화의 주제라는 것을 생각하면 죽음의 문턱에 들어선 파이 앞에 나타난 떠다니는 인간 형상의 섬은 거짓말이나 환각이 아니라 그를 죽음에서 구원한 실제로 일어난 기적이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믿기 어렵고 기적으로 가득찬 첫 번째 이야기와 현실적이지만 잔인하고 믿고 싶지 않은 두 번째 이야기 중 실제로 일어난 것은 첫 번째였을 수 있다는 것이다. >파이라는 수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파이는 끝없이 이어지며 끝나지 않는 수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도 이 파이라는 수를 정확히 알 수는 없죠. '''그래서 이 영화는 끝없이 이어지는 합리적 의심으로 절대적인 믿음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라고 볼 수 있죠.''' >사실 바다 위를 표류하는 배라는 이미지 자체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이나 노이라트의 배를 연상케 하고 있으니까요. 인간이란 공포와 미지의 바다 위에서 이성이란 도구를 이용하여 어떻게든 살아 남아야 하는 존재 입니다. >---- > [[부기영화]],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신 분 찾습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